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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념비 기행/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 뵐커슐라흐트 덴크말

독일 이야기 2019. 10. 2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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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념비 기행/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 뵐커슐라흐트 덴크말

*. /독일 기념비 기행/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 뵐커슐라흐트 덴크말 라이프치히 전투는, 1806년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며 라인동맹을 세우고,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까지 함락하며, 샤를마뉴 대제와 같이 나폴레옹이 꿈꾼 새로운 독일 재편의 그림이 망가지고, 1815년 프랑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신성로마제국 당시 연방국들 중심으로 독일연방을 구성하는 분기점이 된 전투라 할 수 있는데요. 라인동맹에 가입하지 않았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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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 뵐커슐라흐트 덴크말

 

라이프치히 전투는,
1806년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며 라인동맹을 세우고,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까지 함락하며, 샤를마뉴 대제와 같이 나폴레옹이 꿈꾼 새로운 독일 재편의 그림이 망가지고,
1815년 프랑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신성로마제국 당시 연방국들 중심으로 독일연방을 구성하는 분기점이 된 전투라 할 수 있는데요.

라인동맹에 가입하지 않았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와 함께 러시아, 스웨덴, 영국 등이 연합해 러시아 원정 실패 이후 규모가 줄은 나폴레옹 군대와 가장 큰 전투에서 승리해 승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계획한 독일이 아니라, 오늘날 독일의 모습을 이루도록 큰 역할을 한 전투임에도, 오늘날 독일의 입장에서는 선뜻 함께 기념할 수 없는 복잡한 역사가 숨어 있는데요.

라이프치히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한 축을 담당했던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 지역의 강자로 자리잡고, 훗날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닦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라인동맹에 참여했던 다른 독일인은 나폴레옹 군대 일원이 되어 패배한 주인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라이프치히 전쟁 중에 작센과 뷔르템베르크 왕국 등은 첫 이틀은 나폴레옹 군대를 위해, 그 이후에는 대프랑스 연합국으로 옮겨 전쟁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같은 독일이라는 나라가 형성되기 이전에 벌어져, 1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던, 이 날의 전투를 독일에서는 국민 전투라는 뜻인 뵐커슐라흐트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승리의 주역이었던 프로이센 왕국이 라이프치히 전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라이프치히에 1863년에 초석을 세웠는데, 공사가 지연되다 독일 제국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가 통치하던 1898년에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라이프치히전투 100주년이 되던 1913년에 기념비를 준공했습니다.

 

정면80미터, 측면70미터, 높이91미터의 규모로, 가장 높은 곳에는 라이프치히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요. 지금껏 독일에 세워진 기념비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기념비입니다.

 

기념비 입구 정면에는 대천사장 미카엘이 서 있고, 그 위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Gott mit uns)이라는 문구와 라이프치히전투가 벌어졌던 날짜가 새겨져 있습니다.

 

실내에는 16인의 용사와 함께 용기, 민중의 힘, 믿음의 힘, 헌신을 표현한 4개의 거대한 석상이 10만에 달했던 사상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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