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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베르크의 마녀사냥 : 요하네스 유니우스와 바르바라 슈바르츠

독일 이야기 2019. 10. 1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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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유럽에 남겨진 이국적인 중세의 문화 유산을 볼 때면 감탄하게 되면서도, 당시의 부끄럽고 처참한 역사와 마주할 때면 의문과 혼돈을 피할 수는 없는데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아름다운 도시인 밤베르크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는 연방국 중엔 캐톨릭 주교가 제후 역할까지 겸하는, 종교권력이 세속권력까지 거머쥔 제후주교국이 있었는데요.
밤베르크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밤베르크는 독일 역사상 가장 처참한 마녀사냥이 벌어졌던 곳 중 하나입니다.
지난 이야기의 쾰른의 예처럼, 밤베르크에서 벌어진 가장 심한 마녀사냥도 1626년에서 1631년 사이에 일어났는데요.

어처구니없는 마녀사냥은 당시 제후주교였던 요한 게오르크 푹스 폰 도른하임이 주도했습니다.

 

마녀론에 집착한 광신적인 그의 신앙도 한 몫 했지만, 신구 크리스트교 문제로 30년간 전쟁을 벌인 30년 전쟁과, 6월에 눈이 내려 극심한 기근이 든 자연재해도 한 몫 했습니다.

 

이웃의 고소만 있으면, 구금과 고문이 가능했고, 없는 죄를 자백하고 다른 마녀의 이름을 불러야 끝나는 고문을 통해 숱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는데요.

 

사회 불안 요소를 이용해 희생양도 내세우고 정적도 제거하고 재산도 갈취하는 등의 온갖 불온한 동기가 뒤엉켜, 밤베르크에서만 300명, 밤베르크 제후주교국 전체로 1,000명이나 마녀로 몰려 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카타리나 헤놋과 프리드리히 슈페 폰 랑엔펠트를 통해 쾰른 마녀사냥 이야기를 전해 드렸듯이,
밤베르크 마녀사냥 이야기는 요하네스 유니우스와 바르바라 슈바르츠 이야기를 통해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요하네스 유니우스는 당시 밤베르크 시장이었는데요. 밤베르크에 불어닥친 광풍은 그의 가족도 비켜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먼저 마녀로 지목되어 고문을 받고 마녀로 선고를 당했고, 그는 숲속에서 춤을 추는 걸 보았다는 증언 하나만으로 구금을 당해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중에도 무죄를 주장했지만 그 또한 마녀로 지목되어 아내처럼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옥중에서 딸에게 전하려고 비밀스럽게 남긴 옥중서신은 당시 광기를 역사에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부당하게 옥살이 당하고, 부당하게 고문 당하고, 부당하게 죽어야만 한다"

 

극심한 기근을 낳은 6월에 내린 눈을, 당시 지식으론 이해할 수 없어 마녀가 주문으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킨 데 대해 책임을 묻는 고문을 당해낼 재간이 없을 터 였지만, 뼈를 깎고 살을 찢는 극심한 고문의 고통을 끝까지 이겨내며, 없는 죄를 시인하지도, 무고한 이웃을 마녀로 지목하지도 않았던 강인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바르바라 슈바르츠. 거위를 키우던 업을 하던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이웃의 모함에 8번의 고문에도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3번의 고문에도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죄로 판결해야 했지만, 견제받지 않던 무소불위의 권력은 그 한계조차 지키지 않고, 없는 죄를 자백하고 또 다른 마녀 이름을 불 때 까지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8번의 고문에도 죄를 자백하지도, 무고한 이웃을 마녀로 내세우지도 않고 버티었던 바르바라 슈바르츠는 여전히 무죄로 풀려나지 못하고 옥살이를 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만은 않았습니다.

 

감옥을 탈출해, 오늘날 대법원의 역할을 담당하던 제국의회가 열리는 레겐스부르크를 찾아 억울한 처지와 밤베르크 마녀사냥의 부당함을 탄원했고,
1929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페르디난트 2세가 밤베르크 마녀사냥 문제를 심의해 1631년 제후주교인 요한 게오르크 푹스 폰 도른하임을 파면하면서 끝이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해피엔딩만은 아니었는데요. 엄청난 마녀사냥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엔, 남편은 억척스럽다며 배척했고, 아내가 옥살이 중에 함께 한 새 아내와 살기로 했습니다.

 

관료였지만, 무소불위의 통제받지 않는 권력 아래서, 아내도 지켜내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마녀로 몰려 화형당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도 부당함을 주장하며 역사에 기록으로 남긴 요하네스 유니우스,
8번의 고문을 이겨내고, 주권자에게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해 마침내 야만의 광풍을 잠재웠던 바르바라 슈바르츠

 

암울한 역사의 이야기는 그래도,
어처구니 없는 광풍은 끝이 나기 마련이고, 무고한 사람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몰다 파문당한 제후주교가 얼마 가지 못해 도피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엔딩을 전해주며 티끌같은 위로는 해 주고 있긴 한데요.

 

어쨌든,
요하네스 유니우스가 역사에 남긴 교훈과,
바르바라 슈바르츠가 극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주권자를 찾아 탄원해, 어처구니없는 광풍을 잠재운 것처럼,

n분의 1의 주권을 서로 나눠가진 지금의 주권자인 민주사회의 시민들이 어리석은 역사를 끝낼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400년 전 밤베르크에서 처럼...

 

#조국힘내세요 #조국가족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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